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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넷스케이프와 다양한 운영체제

by 앤드뉴스타 2020. 6. 4.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전 세계인들은 인터넷을 서서히 접하기 시작했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란 정식 명칭답게 넷스케이프 로고에는 항해사가 운전하는 조타기 이미지가 펼쳐져 있다.

1996년 조사에서도 전 세계 인터넷 브라우저의 87퍼센트나 점유하던 넷스케이프는 그야말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그 적수가 없었다. 최초였고, 최다였다. 'N'자 로고의 넷스케이프 아이콘이 유일한 인터넷 출입문이었다. 몇 년 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넣은 새 버전의 윈도가 출시되기 전까지 말이다.

넷스케이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먼저 그전에 있던 또 다른 중요한 브라우저를 빠뜨릴 수 없다. 고퍼와의 싸움에서 열세를 보이던 웹이 결국 시간이 흐른 후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시카고의 NCSA에서 일어났다. NCSA는 과거 인터넷의 공유 정신과 관련해 슈퍼컴퓨터 센터를 들여오고, NAFNET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1993년 컴퓨터 시장은 이미 IBM PC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지기 시작한 때이다. 초창기 DOS를 중심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PC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와 HDD의 용량도 커지면서 조금씩 복잡한 것들을 잘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파크연구소에서 개발한 GU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플에서는 이에 특화된 PC인 매킨토시를 발표해였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DOS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매킨토시의 GUI를 벤치마킹한 윈도라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며 이에 대응하였다. 전통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인 유닉스 계열의 운영체제에서도 X 윈도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GUI를 도입하는 추세가 대세로 자기 잡기 시작했다.

다양한 운영체제와 GUI가 등장하였지만 웹 기술은 고퍼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웹은 인터넷에서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였던 PC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와 HDD의 용량도 커지면서 조금씩 복잡한 것들을 잘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파크연구소에서 개발한 GUI에 대한 괌심이 높아지면서 애플에서는 이에 특화된 PC인 매킨토시를 발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DOS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매킨토시의 GUI를 벤치마킹한 윈도라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며 이에 대응하였다. 전통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인 유닉스 계열의 운영체제에서도 X 윈도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GUI를 도입하는 추세가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다양한 운영체제와 GUI가 등장하였지만 웹 기술은 여전히 고퍼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웹은 인터넷에서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보급이 되지 않아 좋은 반응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때 마크 앤드리센이 등장했는데 일리노이대학을 다니며 NCSA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웹과 같은 좋은 기술이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급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특히 웹이 있는 다양한 과학 정보를 인반인들이 쉽게 접근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브라우저가 그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같은 NCSA에서 일하던 뛰어난 프로그래머인 에릭 비나와 함께 유닉스 X 윈도를 지원하는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개월 정도의 작업을 통해 1993년, 오늘날 웹 브라우저 역사에 길이 남는 범용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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