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너스 리는 브라우저 편집기를 통해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편집하는 창조적인 공간으로서 웹이 만들어지길 바랬다. 처음 만들어진 웹사이트에는 하이퍼텍스트가 무엇이고 어떻게 웹페이지를 만드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 그리고 FTP를 통해 소스코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링크까지 걸려 있었다. 이 웹사이트는 웹과 관련된 표준을 만들고 운영하는 W3C에 의해 보존이 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CERN 내부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연구논문이나 문서를 서로 쉽게 브라우징 할 수 있는 용도로 웹 기술을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을 처음 미국으로 가져와 사용한 곳이 스탠퍼드대학 선형가속기센터였다. SLAC에는 특히 30만 개가 넘는 물리학 관련 문서들을 보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는데, 이는 물리학자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스탠퍼드대학의 물리학자인 폴 쿤즈는 SLAC의 데이터베이스를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나름대로 인스턴트 메시징 데이터베이스 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이메일도 활용했는데, 모두들 데이터베이스 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폴 쿤즈는 1991년 9월 CERN에 방문했다가 팀 버너스 리가 웹을 데모한 것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를 이용한다면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손쉽게 연구 논문을 브라우징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스탠퍼드로 돌아와서 C로 만들어진 CERN의 웹 서버 소스코드를 다운로드하였다. 그러고는 스탠퍼드대학의 메인프레임에서 동작하도록 코드를 수정, 적용하였다. 1991년 12월, 드디어 SLAC의 웹 서버가 가동되었고, CERN과 처음으로 웹 서버와 클라이언트로서 서로 연결되었다.
1992년 2월, 남부 프랑스에서 고에너지 물리학에 대한 워크숍이 열렸는데, 이 워크숍에서 팀 버너스 리가 200여 명의 물리학자들 앞에서 웹에 대해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다. 참석한 물리학자들 하나하나가 그의 강의를 지루하게 듣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그러다가 발표가 끝나기 전, 팀 버너스 리가 SLAC 웹 서버에 접속하여 수많은 논문들을 브라우징 하는 것을 직접 보여 주자 모두들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들 웹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웹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되어 웹 기술을 적극적으로 전파시킨 장본인들이 되었다. 인터넷의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혁신으로 일컬어지는 웹 기술 역시 이처럼 과학자들의 제한 없는 공유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웹 탄생의 역사에서 또 한 가지 언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웹을 탄생시킨 CERN의 문화이다. CERN에 모인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학문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보다 창조적이고 열정적이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문화를 즐기고 널리 퍼뜨릴 줄 알았다. CERN의 환경은 최근 구글 등이 보여주는 문화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늘 제공되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놀 수 있는 장소나 이벤트가 계속되는 곳이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를 개방된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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