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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컴퓨터 개발의 거점이 된 미국 동부

by 앤드뉴스타 2020. 5. 10.

MIT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에니악을 개발한 펜실베이니아대학, 컴퓨터 개발로 유명한 카네기멜론대, 일리노이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 동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동부는 컴퓨터 개발의 거점이 되었다. 그 이유는 오대호 주변의 오하이오 주나 미시간 주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공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 근간을 형성한 석유, 철강, 자동차산업 등이 오대호 주변에서 번성하였다. 산업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철도, 전력, 통신에 대해서도 동부에 투자가 집중되어 있었다.

통신분야는 기술적 난제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 당시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전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통신 분야에 더 집중을 해야 했다. 통신산업 가운데서도 컴퓨터를 이용한 기술이 중시되었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가 

AT&A의 벨 연구소였다. 벨 연구소는 미국 통신산업을 주도했고, 성과 지향에 치우쳐 있었다.

벨 연구소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194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전 세계 전자제품 혁명을 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 무선 장거리 통신기술, 세계 최초 TV 방송위성 텔스타, 소니가 상용화한 디지털카메라용 반도체인 CCD, 최초의 실용적 태양전지를 만들었다. 특히 공유와 같은 공동연구의 원칙을 통해 연구소 내의 모든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로써 연구소의 업적을 쌓았고, 벨 연구소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벨 연구소에는 많은 유명한 연구자들이 있다. 이 중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사람이 노버트 위너의 제자인 클로드 섀넌이다. 비트의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인물이고 이를 이용한 정보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섀넌은 통신은 전통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디지털 혁명이 전 세계를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연구소 측에 디지털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학기술 개발 환경이 주로 실질적인 생활의 개선과 관련해 직접 사용이 가능한 부분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벨 연구소 역시 전화와 관련한 다양한 기술이나 장비의 소형화, 음질 개선 등 눈에 보이는 실적, 시장에서 성과를 잴 수 있는지의 여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섀넌이 이야기한 디지털 혁명과 같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혁명적인 미래 변화에 대해서는 연구소 측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벨 연구소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군림하던 AT&T의 강력한 지배력을 이용해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클로드 섀넌이 주장한 디지털과 인터넷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 변화의 씨앗을 늦게 감지했다.

AT&T는 1984년 미국의 반독점법에 의해 강제 분할되면서 모기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쇠락을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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