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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디지털 시대와 미국 서부

by 앤드뉴스타 2020. 5. 10.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고 나서 미국 동부의 힘은 서부로 이동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 중 하나가 윌리엄 쇼클리라는 물리학자이다. 쇼클리는 벨 연구소, 트랜지스터와도 관계가 깊은 인물이다. 존 바딘, 윌터 하우저 브래튼과 공동으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그것으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쇼클리는 1936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에 합류했다. 그는 샌드위치 형태의 트랜지스터 개념을 새롭게 생각하고 연구했고, 1951년 접합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특허권을 가졌다.

쇼클리는 강의와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미국 정부와 국방부의 고문으로 활약했고, 대중매체에서 조명을 받았다. 

트랜지스터는 실리콘을 소재로 만들어졌고, 진공관을 대체했다. 라디오, tv, 냉장고, 보청기, 게임기 등 가전제품과 통신기기, 컴퓨터, 우주항공 산업에 전파되면서 21세기 디지털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된 발명품이다. 쇼클리에 대한 대중매체의 조명은 버딘, 브래든과 서로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편집 광자, 독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벨 연구소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경영진으로 승진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쇼클리는 연구자, 이론가로만 평가받는 것에 그치게 되었다.

그는 1953년 벨 연구소를 떠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열 살 많은 대학동창이자 절친인 아널드 벡만을 만나게 된다. 쇼클리는 자신의 명성과 벡만의 자금력을 이용해 벨 연구소의 옛 동료들을 자신의 연구소로 데려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독선적인 성격이 이유가 되어 아무도 그의 연구소로 오지 않았다. 또한 당시 동부와 서부의 차이가 커서 동부의 우수한 인재들을 서부로 데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인근 대학을 돌며 뛰어난 졸업생을 찾아 연구를 진행했지만 연구는 생각보다 진척이 되지 않았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그의 괴팍한 성격은 연구원 8명이 회사를 나오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8명의 사람들은 페어차일드 카메라&인스트루먼트로 옮겨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다. 쇼 콜리는 이들을 '배신자 8인'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 8명의 사람들은 서부 대학을 졸업하고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서막을 연 인물들이다.

쇼클리가 '배신자 8인'이라고 비난한 사람들 중에는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차린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그리고 실리콘 밸리 최고 벤처캐피털로 성장하게 되는 KPCB를 설립한 유진 클라이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텔 외의 내셔널 세미컨덕터와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 등의 회사도 페어차일드에서 나온 회사이다. '배신자 8인'은 모두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밴도체 회사의 급성장으로 실리콘을 재료로 한 산업이 샌프란시스코 남쪽 밸리 지역을 번성케 하면서 이 지역을 실리콘밸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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