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역사에서 대항문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LSD이다. LSD는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합법적인 소지와 사용이 가능했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키거나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코뮌을 형성하는 운동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코뮌은 원래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한 중세 서유럽의 행정구에서 나온 용어로, 시민들이 서로 보호하고 돕겠다는 맹세로 굳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항문화의 주역인 청년들 상당수가 LSD와 록음악에 심취한 채 자연에서 집단을 형성했는데, 이것이 코뮌이다. 당시 텔레비전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에 역동적인 청년들은 화려한 영상보다 음성과 음악이 영향력이 훨씬 컸다.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이나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 음악 역시 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LSD와 관련해서 티머 리 리어리라는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이 사람은 이 약물을 폭넓게 실험하고 대중화하면서 숱한 사건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른다섯 생일에 아내 메리앤이 자살하고 심리학자로서 어떤 심리치료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사실에 좌절하고 환각 약물을 만났다.
티머시는 하버드 대학 인성연구센터에서 대학과 교도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 로시 빈과 LSD를 실험했다. 환각 상태의 '재각인 효과'를 통해 인성을 근본적이고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이 일로 하버드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연구를 멈추지 않고 뉴욕 주 밀르 룩 깊숙한 곳에 빅하우스 연구센터를 만든다. 여기서 사람들과 다양한 약물로 의식의 여러 수준을 '여행'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티머 리 리어리는 환각을 통해 인간의 영역을 확장하고 인간에 관한 정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실험을 동부에서 이루어졌지만 LSD와 코뮌 활동이 번성한 곳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이다. 그리고 LSD 체험을 시각화한 연극과 영상을 만들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고 우드스톡에도 참여했다. 그는 수감과 탈옥, 망명 등을 계속하다가 1976년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고, 강의와 영화 제작, 글쓰기에 전염했고, 1996년 5월 3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LSD가 일으킨 환각 상태는 사람들마다 다양했지만 모든 살아있는 것과 대화를 나누게 하고 거대한 지구와 덩어리가 되어 호흡하게 한다거나 내면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몽상가로 만들어버리는 등 기묘한 경험을 선사했지만 LSD환각은 언제나 사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존슨 행정부가 약물에 맞서 전쟁을 선포한 후 더 이상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약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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