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딸이 대세!?
명절에 온 식구가 다 모인 자리에서 친정 아빠가 나의 사촌 언니에게 대뜸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넌 딸 하나 낳았으니까, 얼른 아들 하나 또 낳아야지~!"
"무슨 소리예요, 요즘엔 딸이 대세거든요!?"
친정 아빠에게 바로 반격의 말이 날아온다.
그렇다. 요즘엔 딸이 대세라고들 한다.
임산부 시절, 주변 임산부들에게 물어보면 아들을 바란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거 같다.
다들 딸바보가 되고 싶은 눈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첫째 딸을 출산하고, 아이가 20개월 쯤 됐을 무렵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큰 아이는 바라던대로 딸이었고, 둘째 아이 역시 난 딸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꿈은 이루어진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직후부터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 아이 역시 딸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들었다. 너무 강한 믿음이었던 나머지 나는 병원에서 성별을 확인하기도 전에 둘째가 딸이라는 확신을 미리 해 버렸다.
내가 너무나 딸을 원하기 때문에, 내 몸안에서는 분명히 딸이 성장하고 있을거라는 터무니없는 확신.
자매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
20대 초반, 오랜만에 친구랑 만나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서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중...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난 저쪽가서 동생 만나기로 했어. 집에 같이 들어가려고~"
분명 고등학교 때, 나한테 여동생 욕을 많이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학교 다닐 때는 서로 옷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사소한 걸로 티격대격 많이 하기는 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여동생을 있는 내 친구가 너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30대 초반,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내 모습이 한참 낯설때였다.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와 자주 연락을 하면 엄마가 된 이후의 고민거리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먼 곳에 살아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카톡으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연락을 나눴다.
엄마가 된 일상이 낯설고, 변화된 환경에 우울하다는 서로 얘기를 하는 중에 친구가
"나 요즘 너무 우울해서, 언니 집으로 출퇴근 하면서 언니랑 같이 육아하고 있어"
라고 자신의 소식을 들려준다.
함께 육아하는 자매라니, 외롭고 우울한 나의 초보 엄마 시절 친구가 너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아이들은 자매로 만들어줄꺼야!!!
어느순간부터 이런 부러운 마음들이 하나둘 쌓여서, 나는 내 아이들을 자매로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결심으로 될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둘째를 임신한 소식을 알게된 이후, 둘째 역시 딸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 믿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내 몸은 당연히 내 믿음을 따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2주 산부인과 검질날..
담당 선생님이 아들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신다.
'아들..? 다음주에 성별이 바뀔 수도 있어..'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는, 다음 정기검진 날짜를 기다린다.
아기를 뱃속에서 한달 더 키워 다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또 다시 듣게된 아들이라는 단어..
초음파 검사 중, 가슴에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눈에 고이는 눈물을 다시 집어넣느라 힘들었다.
아들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속상하고, 서럽게 느껴졌는지...
혹시나 성별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딸 낳는 법은 없을까? 상상의 나래를 다 펼쳐봤지만...
둘째는 결국 아들이었고, 나는 남매 엄마가 되었다.
아들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무척이나 !
딸과 함께 다니면서 아들과 함께 다니는 엄마들을 보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 엄마들에게서 칙칙한 먹구름의 기운이 느껴졌달까?
육아 자체가 힘든일이지만, 아들 엄마는 딸을 키우는 엄마들보다 특별히 더 힘들거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다 나도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것이다!!
근데 아들 엄마가 되기전, 내 생각들은 완전히 편견이었다. 아들 엄마들에게 느끼던 은근한 우월감(?) 역시 나의 편견이 만들어낸 의미없는 감정이었다.
하루하루 더 사랑스러워지는 나의 둘째, 아들을 향한 내 마음이 흘러넘치다 못해 폭발하며.
"여보, 아들도 딸처럼 이렇게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 줄 몰랐어~"
라며 남편에게 아들 예찬론을 쏟아낸다. 남편 역시 자신도 아들이 이렇게 귀여울 줄 몰랐단다. 아들은 징그러울 줄 알았다나 뭐라나.
아마 아들이 수엽이 나고 우리 남편보다 키도 더 커지고 하는 순간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상이 되었나보다.
말이 트인 아들, 엄마 마음을 녹인다. 아주 흐물흐물하게 !!!
"서릐야~"
밥 먹다 말고, 3살 아들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른다.
'역할놀이 하고 싶은건가?'
생각하고는 아들에게 응답을 해본다.
"왜~?"
"니가 제~일~~ 이뻐~"
순간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며, 밥 먹다 웃음이 팍 터졌다. 이런말은 어딛서 배운건지 모르겠다.
평서에 남편이 해주던 말이라면, 아빠한테 배웠나보다 할텐데
출처가 나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예쁘다는 사람, 우리집의 둘째 내 아들밖에 없다.
큰딸은 나에게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 하는 말처럼,
엄마를 표현하는 말중에 좋다는 말을 자주한다.
근데 왠지 모르게 이쁘다는 말이 훨씬 기분이 좋다.
자식은 그저 자식이라는 이름.. 그 자체일 뿐.
딸, 아들 둘 다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부모의 입장에서 성별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저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해질 뿐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아플 때인데, 한번 겪고 나면 한동안은 말썽부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이쁘게 보이는지 모른다.
어느날 새벽, 아이가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다.
한번에서 끝나는 것이라면, 이불만 빠는 걸로 끝났을테지만 상황이 계속되어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이가 설사까지 하기 시작해서 화장실까지 왔다갔다하게 되며서,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화장실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던 중, 눈에 들어온 소아 응급실 옆 중증환자 응급실...
거기에 누워있는 중학생 정도로 밖에 안보이는 어린 아이를 보고 힘들다는 마음이 쏙 들어갔다.
건강보다 중요한건 없다. 나에게 해당하는 말인것과 동시에 나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자식이 아들이다, 딸이다 성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굳이 중요성을 따지자면 최하점 정도 줄 수 있을거 같다.
딸을 가진 엄마로 우쭐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부끄럽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딸을 가졌다는 것을 내 자랑거리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식의 특별한 성별이 부모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자식을 나의 자랑거리로 만들려는 고민보다는,
커가는 나의 딸과 아들을 보며,
< 부모인 내가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한 어려운 고민을 시작해본다.
나의 딸이 딸이라서가 아니라,
나의 아들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부모로써, 자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매도 상당히 괜찮은 관계였다 !
나는 남매로 자랐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다.
생사만 확인하는 사이라고나 할까 !?
그래서 육아로 더 돈독해지고, 애틋해지는 자매들이 더욱더 부러웠고 내 아이들을 자매로 키우고 싶었다.
원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 딸과 어린이집에 다닌고 있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남매라는 관계도 참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둘째 아이가 어릴 땐 아이 둘을 돌보는게 혼자서는 조금 버거웠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로써 기분이 좋을때가 많다.
첫째 딸의 경우 또래보다 말이 상당히 빠르고 표현력이 좋았다. 하지만 신체적인 면에서 또래보다 떨어지는 면이 있다.
둘째 아들이 첫째 딸보다 3살이나 어리기는 하지만 특정 신체적인 면에서 더 월등하기도 하다. 매달리기 같은 경우 3살인 남동생이 6살인 누나에게 "누가 이렇게 매달리는거야, 해봐" 하면서 매달리기 방법(?)을 지도해 주기도 한다.
둘째 아들은 아직 3살이라서 말이 서툴다. 현재는 할 수 있는 말도 많고, 표현력도 좋아지기는 했지만 몇달전만 하더라도 첫째 아이가 동생말을 엄마, 아빠가 알기 쉽게 번역해주는 우리집 통역사로 활약을 펼쳤었다.
아직 소근육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동생의 점퍼 지퍼를 올려주기도 하고 동생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챙겨주는 등 6살 첫째가 요즘 아주 듬직해졌다.
며칠전 아침, 둘째 아이가 늦잠을 잤다. 일부러 조금 더 재워서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려고 첫째 먼저 유치원 등원을 시켰다. 눈을 떴는데 항상 옆에 있던 누나가 없는걸 확인하고 내 뱉은 한마디..
"누나 보고싶어~"
이날은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먼저 하원시켜서, 첫째 아이 유치원버스 하원을 같이 기다렸다. 멀리서 오는 노란버스를 보고 차가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누나야~! 누나야~!!!"
외치던 아이...
기다리던 누나가 버스에서 하차하자, 누나에게 달려가서 안긴다.
서로 얼싸안고, 옆에 서 있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두 남매...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추억과 시간들을 만들어주고 싶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자매에 대한 환상과 남매에 대한 편견을 오늘 모두 깨뜨려보고 외쳐본다.
남매도 꽤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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