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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해커와 인터넷의 시작

by 앤드뉴스타 2020. 5. 21.

유닉스와 UC 버클리, 그리고 MIT에서 일했던 리처드 스톨만, 그리고 리눅스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해커이다. 페이스북 CEO인 마크 주커버그가 기업 공개 때 주주들에게 남겼던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 중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이 '해커 정신'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언급한 해커 정신이란 백 마디 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하는 문화이다. 실패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어야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커라는 용어는 스튜어트 브랜드가 <롤링스톤>에 쓴 '스페이스 워'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매사에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사람이 '플래너'라면, 이와 반대로 즐거움에 이끌려 임의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하거나 발명하는 사람을 '해커'라고 불렀다.

당시 제록스파크연구소의 해커들은 PDP-7 컴퓨터를 이용해서 우주 전쟁을 테마로 한 텍스트 게임인 스페이스 워 게임을 개발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이때 이용한 네트워크가 오늘날 인터넷의 효시인 아파 넷이 되었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스페이스 워 기고문에 등장하는 파크 연구원 중에는 최초로 태블릿 컴퓨터를 구상했던 앨런 케이도 포함되어 있다. 앨런 케이는 스튜어트 브랜드와 엥겔바트의 데모에서 컴퓨터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하였다. 이전까지는 컴퓨터를 계산과 세뮬레이션 등의 용도로 생각했지만, 이때부터는 그 용도를 떠나 개인용 컴퓨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구상하게 시작했다.

앨런 케이가 구상한 개인용 컴퓨터는 제록스 알토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티브 잡스도 제록스 알토에서 영감을 얻어 매킨토시를 개발하였다. 앨런 케이는 후에 개인용 컴퓨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컴퓨터를 미디어 소비기기로 취급한 최초의 태블릿 PC인 다이나 북도 구상하였다. 다이나북은 태블릿의 형태이면서도 동시에 터치패널 입력까지 구현하였는데, 이런 시도가 1968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놀랍다. 그 후 무려 40년이 지나 아이패드라는 태블릿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제록스 파크에서 스페이스 워를 즐겼던 해커들이 이용한 아파 넷은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이 된 컴퓨터 네트워크이다. 아파라는 이름은 미국의 고등 연구 계획국의 약자에서 따온 것으로, 1969년에 개발되었다. 다르파는 1957년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미국이 그다음 해인 1958년 첨단 기술 연구를 위해 설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확약했던 군과 대학을 포함한 민간 연구기관의 협력 체제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미국 전역에 있는 유수 연구기관들의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보를 교환하는 인프라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사실상 냉전 당시에 가장 위협적인 시나리오였던 핵 공격이 있을 경우 통신 기능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기술이 요구되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화망과 같이 각각의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형태보다는, 효율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우회를 통해서 연결이 끊어지지 ㅇ낳도록 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가 필요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데이터를 잘게 자르고, 복수의 경로를 통해서 보내더라도 수신 측에서 이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패킷을 활용할 수 있기 설계하였다. 또 네트워크 일부가 파손되어도 쉽게 복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간의 통신 규칙인 프로토콜을 정했다. 프로토콜만 준수하면 누구나 손쉽게 새로운 네트워크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아파 넷은 다르파에서 그들의 연구비를 투자한 여러 연구기관을 연결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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